[전문기자 칼럼] 단추업체의 500년 생존비결

입력 2019-12-18 18:22   수정 2019-12-19 00:15

제조업 강국 독일에는 약 370만 개 기업이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기업은 어디일까.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수년 전 자국의 장수기업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단추업체 프륌은 1530년, 와인잔업체 포슁어는 1568년, 은행인 베렌베르크방크는 1590년, 수제화업체 에드마이어는 1596년, 양조업체 프리드르는 1664년 문을 열었다. 이들은 최고(最古) 기업으로서 1~5위를 차지했다.

기자가 방문한 프륌은 독일 중서부 끝자락 스톨베르크에 있었다. 역사는 500년에 육박한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두산과 동화약품의 역사가 130년이 채 안 되는 것과 비교하면 장구한 세월이다. 독일에는 200년 넘은 기업만 800여 개에 달한다. 어떤 전략으로 경영해왔기에 이렇게 오랜 세월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고급화 및 혁신으로 성장

프륌이 장수한 데는 몇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 명품 전략이다. 주력 제품 중 하나인 스냅버튼은 청바지 등에 들어가는 단추다. 하지만 수만 번을 잠그고 풀어도 고장이 나지 않는다. 모서리가 거칠면 옷감이나 핸드백의 가죽이 상할 염려가 있다. 하지만 이 단추는 참기름을 바른 듯 매끄럽다. 동남아시아산보다 몇 배나 비싼데도 명품의류나 핸드백업체들이 이 제품을 찾는 까닭이다.

둘째, 혁신이다. 창업자 프륌은 원래 구리제련사업을 벌였다. 그 뒤 이를 활용해 단추 바늘 등을 생산했다. 최근에는 이들 재료를 활용한 전자부품 자동차부품 등으로 다각화하고 있다. 금속가공이라는 뿌리기술이 바탕이다. 이들은 전혀 다른 분야가 아니다. 금속을 얇게 펴면 전자부품이나 자동차부품이 된다. 이같이 관련 다각화를 하면서 혁신을 접목했다. 예컨대 카멜레온단추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한다. 초소형 다리미도 있다. 여행 가방에 간편하게 넣어 다닐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개발된 제품이 약 1만 종에 이른다. 혁신상을 받은 제품만 76개에 이른다.

셋째, 글로벌화다. 유럽 아시아 북미 등 35곳에 공장 및 판매망을 운영한다.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제작해 글로벌 시장에서 파는 게 전략이다.

뿌리산업 도외시해선 곤란

4차 산업혁명 바람이 거세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첨단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단추 바늘을 대체할 순 없다. 프륌은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전통산업의 중요성이다. 이 분야에서도 혁신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섬유산업이 한국에선 찬밥 대우를 받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선 첨단패션산업이다. 국내엔 여전히 전통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 많다. 텐트 핸드백 가죽원단 가구 골판지상자 의류 완구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도금 주물 열처리 금형 단조 같은 뿌리분야의 전통산업도 있다. 전국의 뿌리기업은 2017년 기준으로 2만5056개에 이른다. 이처럼 전통산업은 제조업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또 하나는 정부 정책이다. 4차 산업혁명이 중요하다고 해도 국가 연구개발의 초점을 여기에만 맞추는 것은 곤란하다. 이런 쏠림 현상 때문에 전통산업, 특히 뿌리산업이 소외돼서도 안 된다. 독일의 제조업이 강한 것은 주물 열처리 등 뿌리기술이 강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뿌리산업을 첨단산업으로 예우할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선진국의 기술 프리미엄 영역’으로 여긴다. 우리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산업의 중심은 제조업이고, 제조업의 기반은 뿌리기술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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